2025년 여름, 캄보디아 박람회에 참가하러 떠났던 20대 한국 대학생이 고문 끝에 숨진 채 발견됐다. 납치 피해가 급증하는 가운데, 주캄보디아 대사관의 부실한 대응과 장기 공석 사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캄보디아 납치 대학생, 2주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2025년 7월, 경북 예천 출신의 대학생 박 모씨(22)는 가족에게 “해외 박람회에 참가하고 싶다”며 캄보디아로 출국했다. 출국 후 약 일주일이 지나자, 박 씨의 가족은 낯선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남성은 조선족 말투로 자신을 납치범이라 밝히며, 박 씨가 감금되어 있고 5,000만 원을 보내야 풀어줄 수 있다고 협박했다.

가족은 즉시 캄보디아 주재 한국 대사관과 현지 경찰에 신고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매뉴얼 수준에 그쳤다.
경찰은 몸값 송금은 금지라는 원칙만 전달했고, 대사관 측은 현지 경찰에 연락하라고만 안내했다. 박씨의 정확한 위치는 파악되지 않았고, 납치범과의 연락은 며칠 만에 끊겼다.
그로부터 3주 후인 8월 8일, 박씨는 캄폿주 보코산 인근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다음날인 8월 9일, 한국 정부와 캄보디아 당국의 합동 구조작전으로 14명의 한국인이 구출됐지만, 박 씨는 단 하루 차이로 생명을 잃은 셈이다.
현지 생존자 “말도 못할 정도로 맞았다”…심장마비로 사망
동일 조직에 감금됐다가 극적으로 구조된 생존자들의 증언은 충격을 더한다. 구조자 중 한 명은 “박 씨는 너무 심하게 맞아, 걷지도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상태였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박 씨는 이미 다른 범죄조직에 의해 강제로 마약 운반에 동원된 후 다시 거래되어 온 경우였고, 기존 조직에서도 잔혹한 폭행을 당해 말조차 어렵게 할 정도였다.

병원으로 옮겨지는 도중 사망한 박씨의 사망진단서에는 ‘고문에 의한 심장마비’로 기재됐다. 그러나 박 씨의 시신은 10월 현재까지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상태다. 캄보디아 내 부검 절차와 화장 행정 지연 등 복잡한 현지 행정 절차 탓이다.
박 씨의 부친은 “차라리 아프다고만 연락이라도 왔다면 이렇게 허망하진 않았을 것”이라며 “죽어서도 돌아오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참담하다”고 울분을 토했다.
문제는 반복되고 있다…대사관의 ‘소극적 대응’ 도마 위에
캄보디아 주재 한국 대사관의 소극적 대응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24년에도 리딩방 사기 조직에 납치된 40대 한국인이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현지 경찰에 문의하라”는 원론적인 답변 외에 실질적인 조치는 없었다.
해당 피해자는 여권과 휴대폰까지 빼앗긴 상태에서 가까스로 확보한 다른 휴대폰으로 대사관에 연락했지만, “해당 지역은 위험해 직접 갈 수 없다.
프놈펜으로 나와야 조치가 가능하다”는 답변만 받았다고 한다. 이처럼 적극적 구조보다는 관망적 태도가 반복되며, 현장 대응 시스템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작 대사는 3개월째 ‘공석’…경찰 인력은 단 3명
더 큰 문제는 외교부의 인사 공백 사태다. 2025년 6월 정권 교체 이후 주요 대사들이 일괄 소환됐고, 주캄보디아 대사 자리도 3개월째 공석이다.
전임 대사는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고 7월 퇴임했지만, 후임자는 여전히 파견되지 않았다.

한편, 현지 대사관 내 한국 경찰 인력은 단 3명에 불과하다. 이들로는 매일같이 접수되는 한국인 실종·피해 신고를 감당하기 어렵다.
납치 피해가 빈발하는 지역에서는 한국인을 겨냥한 피싱·마약 범죄가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실질적인 수사·구조 자원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납치 신고 90배 폭증…‘해외 취업 사기’가 주요 수법
외교부가 국회에 제출한 통계에 따르면, 캄보디아 내 한국인 대상 납치·감금 신고는 2021년 4건에서 2024년 221건으로 폭증했고, 2025년에는 8월까지만 330건에 이른다.
특히 취업 사기를 당한 후 납치된 피해가 급증했는데, 2023년 17건에서 2025년에는 252건으로 14배 이상 증가했다.

범죄 유형도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 ‘고수익 알바’, ‘해외 IT기업 채용’ 등을 미끼로 한국인을 끌어들인 후, 도착 즉시 여권과 휴대폰을 빼앗고 감금·폭행하며 불법 행위에 강제로 동원하는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일부는 로맨스 스캠, 일부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연루되기도 했다.
늦은 경보와 뒤늦은 대책, 정부 대응 시급성 드러나
외교부는 납치 사건이 확산된 후인 2025년 9월 17일에야 프놈펜에 2단계 여행경보, 보코산·바벳 등에는 2.5단계 특별여행주의보를 발령했다.
이어 10월 13일에는 대통령실 주재로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며, 범죄 대응을 위한 대책 논의에 착수했다.

이제야 한국 경찰은 ‘코리안 데스크’라는 전담 수사 협력팀을 구성하고, 캄보디아 현지 수사기관과의 공조 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련의 조치들은 모두 사망 사고 이후의 사후 대응이라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구조 하루 전 사망…“더 빨랐다면 살릴 수 있었다”
박 씨의 안타까운 죽음은 단순한 개인적 불운이 아니라, 재외공관 시스템의 허점이 초래한 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구조작전 단 하루 전 사망했다는 사실은 “단 하루만 빨랐더라면 살릴 수 있었던 생명”이라는 가정을 가능케 한다.
나경원 의원은 “납치범의 방식은 반복되고 있고, 피해자도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데 왜 시스템은 제자리에 머무르느냐”며 정부의 구조 시스템 전반을 재점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사관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재외국민 보호 체계 개선 시급
현재 대사관은 재외국민 보호를 위한 최후의 보루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통해 한국의 재외공관 대응 체계는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대사 공석, 인력 부족, 미흡한 24시간 대응체계 모두가 개선되어야 할 항목으로 꼽힌다.

향후 국정감사에서는 주캄보디아 대사관의 조직적 무책임, 인사 시스템 공백, 범죄 대응력 부족 등이 핵심 의제로 다뤄질 예정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달린 문제인 만큼,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구조적 개편이 절실하다.
[함께 보면 도움 되는 글]